LG의 역사 연재26편] 인류의 건강증진과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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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5. 9.
LG의 역사 연재26편]
인류의 건강증진과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한다
신약을 개발하려면 보통 10~15년의 시간과 천문학적인 자금 투자가 필요하다. 이렇게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성공할 확률은 고작 1만분의 1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LG는 1991년 신약 개발에 첫발을 내딛은 이후로 오랜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신약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대한민국에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인류의 건강한 삶과 풍요로운 미래를 만들겠다는 목표와 사명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도전이었을 것이다. 국민의 건강 유지와 삶의 질을 향상시켜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바로 그것이 LG의 목표이다.
생명과학은 여러가지 생물학적 현상과 기능 연구를 통해 의약품 및 의료 기능을 향상시켜 국민건강을 유지하고, 인구 식량 환경 문제에 이르기까지 인류 복지에 다양하게 활용되는 종합과학이다. 1930년대에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대두하기 시작했고, 국내에서는 1981년 LG가 유전공학연구소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생명과학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신약 개발은 크게 바이오 신약과 합성 신약 개발로 나뉜다. 바이오 신약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질을 활용하여 끊임없는 배양 기술의 개발과 개선으로 의약품을 만드는 것이고, 합성 신약은 물질과 물질의 화학적 합성과 배합을 무한히 반복해서 새로운 물질을 개발하는 것이다. 두가지 신약 모두 3차에 걸쳐 임상시험을 완료해야 제품 출시가 가능하지만, 제네릭 의약품(복제약)은 신약으 특허가 만료된 뒤 같은 품질과 효력만 입증하면 출시할 수 있다.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신약 개발 대신 제레닉 의약품을 만드는 제약 회사가 대부분이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LG는 쉽고 빠른 길보다 어렵더라도 의미 있는 깅르 택하기로 했다. 1979년 '럭키중앙연구소'가 모태가 되어 성장한 LG화학 생명과학사업본부는 1989년 안진제역을 인수하면서 상대적으로 쉽게 만들 수 있는 제네릭 의약품 대신,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용되지만 인체에 더욱 안정적으로 작요할 수 있는 바이오 신약 개발에 매진해왔다. 그 결과 국내 최초로 유전공학을 기반으로 한 바이오 신약인 인터페론제제 '인터맥스 감사' B형간염백신 '유박스B', 성장호르몬제 '유트로핀' 등 다수의 의약품을 자체개발하며 국내 생명과학과 제약 산업 발전을 선도해왔다.
"꼭 필요한, 좋은 의약품을 제공함으로서 국민 건강과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겠다는 LG의 사명감은 인류의 건강과 행복에 기여하는 새로운 가치 창조로 이어질 것이다."
1991년, LG생명과학(현 LG화학) 여섯 명의 연구원들에게 세계적인 합성 신약을 개발하라는 사명이 부여되었다. 국내의 선례가 없었기에 모든 것을 스스로 개척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항생제 개발에 들어간 지 채 1년이 되지 않았을 무렵, 신물질을 찾아내 동물실험에 들어갔지만 독성으로 인해 실험이 모두 실패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개발팀장이 암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팀은 해체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7개월 만에 다시 시작된 프로젝트. 연구 인력도 20명으로 대폭 늘어나고 하버드대 출신의 유능한 젊은 과학자 홍창용 박사가 개발팀장으로 합류했다. 신약개발팀은 차세대 항생제로 각광을 받고 있던 퀴놀론계 항생젤 개발을 목표로 설정하고 연구에 매진했지만 1년 반 동안 별다른 성과 없이 연구는 계속 표류했다. 팀원들의 사기마저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몇 번의 큰 고비를 넘기며 3년째로 접어든 어느 날. 홍창용 박사는 팀원들이 모두 퇴근한 연구실을 홀로 지키며 304번째 화합물(LB20304a)의 시험관 약효 평가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실험 결과의 수치들이 프린트되는 그 짧은 시간이 어느 때보다 길게 느껴졌다. 결과를 받아든 홍 박사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기존 항생제 보다 무려 100배 이상 뛰어난 약효 수치가 프린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 퀴놀론계 항균제의 구조를 변형시킨 뒤 옥심(Oxime)이라는 구조를 도입한 독창적 구조의 화합물이, 마침내 획기적인 신약후보물질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몇번의 좌절과 시련을 겪으면 신약 개발에 회으를 느껴야 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프로젝트 중단이라는 위기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개인시간을 반납하면서까지 연구에 몰두해준 팀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홍 박사는 메모지를 꺼내 벅찬 마음으로 메시지를 적어 팀원들의 컴퓨터에 하나씩 붙여놓았다. "Congratulation! We mdae it!"
이 신약후보물질(LB20304a)은 '팩티브'라고 명명되었다. 다음 목표는 FDA의 승인이었다. FDA의 승인절차는 매우 까다롭기로 유명했지만 일단 승인을 받고 나면 곧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보증수표나 다름없었다. 곧바로 동물실험과 1,2,3차 임상시험을 준비해야 했고 공장도 건설해야 했다. 개발팀은 임상시험과 공장건설을 위한 투자를 받기 위해 새계 유명 제약회사에 제휴를 요청했다. 그러나 약 30여개의 제약회사에 건넨 제휴 요청은 모두 거절당했다. 그동안 합성 신약 개발에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 대한민국 제약사의 제휴 요청은 그다지 끌리는 제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른 접근 방법일 필요했다. 어렵사리 미국 항생제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로널드 존스박사와 접촉을 하게 되었고 신약 후보물질에 대한 시험을 의뢰했다. 존스 박사는 시험 결과 후보물질의 뛰어난 효능을 실감하였고 이를 각종 학회시에 보고하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세계 유수의 제약사들이 제휴 요청을 해온 상황에서 미국 SB사와 계약이 성사되었다. 드디어 개발팀은 3차 임상시험까지 모두 마치고 FDA에 신약 승인 요청서를 제출했다. 2000년 12월, 최종 승인 통보가 오기로 한 날일 밝았다. 하지만 결과는 승인 유보. 99% 승인을 확신하고 있던 개발팀은 10여년간의 노력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큰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피땀 흘려 쌓은 결과와 수백억 원에 달하는 개발비가 모두 물거품이 될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