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의 역사 연재6편] 연암 구인회의 삶과 철학

LG의 역사 연재6편] 연암 구인회의 삶과 철학

LG의 역사 연재6편] 연암 구인회의 삶과 철학


오늘날 LG의 사훈으로 표명되고 있는 인화단결은 사실 구씨 집안의 가훈이다. 구인회는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허씨 집안사람들은 물론 구씨 집안 형제와 2세들로 복잡하고 다양하게 이루어진 인적구성을 잘 이끄는 비법이 인화단결임을 체득했다. 그러나 일가친척이라 해서 특혜를 주어 중요한 자리에 곧바로 않히는 법은 없었다. 누구나 밑바닥에서부터 철저히 배우고 경험을 쌓으며 능력을 입증해야 등용되었다. 특히 유교적 가족주의 공동체사상이 강했던 탓에, 장남 구자경에게 "본시 맏이란 고된 법이다. 남들은 놀아도 맏이는 놀 새가 없고, 묽은 걸 알고, 된 걸 알아야 남을 다스려 나갈 거 아니냐. 너는 아버지를 대신할 책임을 명심해야 한다."라며 장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구인회는 낭비하지 않고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구두쇠 소리를 듣기고 했지만, 필요한곳에 쓰는 돈은 아김없는 대인배였다. 럭키치약이 미제치약을 물리치며 시장을 석적해나가던 시절 락희화학은 서울의 반도호첼 빌딜에 있는 사무실로 출퇴근하는 직원들을 위해 합승버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평소 합승버스를 자주 이용하던 구인회 사장에게 어느날 한 임원이 택시나 자가용을 권했다. 그러나 구인회는 "사람들이 날 구두쇠라 불러도 내겐 칭찬같이 들리오. 옛말에 돈이란 벌기보다 쓰기가 어렵다고 했소. 합승버스가 있는데 뭣 때문에 휘발율 없애고 길바닥에 돈 뿌리며 택시를 탄다는 말이요."라며 손을 저었다. 그런 구인회였찌만 일제 말기 백산 안희제 선생에게 독립운동자금으로 당시로서는 거금인 1만원을 선뜻 건네주었다. 점심 식사 때 좁은 골목길의 국밥집을 애용하는 소탈함을 지녔지만, 도움을 호소하는 주변에는 선뜻 거금을 내주면서 영수증도 받지 않은 일이 적지 않았다.



구인회의 사업 의지는 항상 국민 생활에 편하고 즐겁게 만들면서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남이 미처 안하는 것을 선택하라. 국민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것부터 착수하라. 착수하면 과감히 밀고 나가라. 성공해도 거기서 머물지 말고 그보다 한 단계 높은것, 한층 더 큰 것, 보다 어려운 것에 새롭게 도전하라"고 역설하였다. 럭키치약 하나만 보더라도 원가절감을 이유로 원료를 질이 낮은 것으로 바꾸어 사용한 일이 없었다. 럭키 제품을 선택해주는 소비자에게 언제나 더 좋은 품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꿈을 가진 기업인의 의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오래전부터 가족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구인회는 "돈을 벌기만 했는데, 사회에 기여하려면 무슨 방면에 쓰면 좋을까?" 하고 물은 적이 있었다. 구자경이 문화재단을 만들어 농촌지도자를 양상하고 싶다고 말핮, "농촌 지도자도 좋지만, 공업으로 나라를 일으키는 마당에 그 방면의 교수나 학생들을 도와주는 것도 시급한 게 아이가? 명색만의 도움에 그치지 말고..."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얼마 후 서울특별시 교육위원회에 문화재단의 설립 계획서와 함께 허가원을 제출하였다. 재단의 사업목적은 학술,문화,기술 개발을 위한 장학육영사업과 사회복지사업 등으로 정하였다. 교육위원회를 거쳐 계획서를 검토한 정부는 구 회장의 뜻을 크게 환영하면서 문화재단 설립을 승인했다.



구인회는 한번 결정하면 전력을 투입하고, 10년은 견뎌내야 한다는 선친의 가르침을 몸서 실천하였다. 어떤 약속이나 한번하면 반드시 지켰는데, 결코 의리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사돈이나 친구가 하는 일을 빼앗거나 훼방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는 것을 김기로 알았다. 기업의 정도는 창의와 노력으로서 새로운 부를 창출해나가는 것이지, 이미 형성되어 있는 자본재에 투기함으로서 불로소득을 얻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 확고한 신념이었다. 


또 유교 가풍이 엄격한 집안의 장손으로 원칙을 중시하면서도 아랫사람에게는 다정다감하였다. 해외를 다녀올 때면 혁대나 넥타이, 넥타이 핀 같은 것들을 사서 아랫사람들이 자기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게 하기고 했고,몸이 아픈 직원이 있으면 한의사를 회사롤 불러 진맥을 받게 하기도 했다. 친구나 부하에게 공을ㅇ 돌리는 넓은 금도를 지녔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우리고 한 번 믿으면 모두 맡겨서 조언은 하지만 간섭은 하지 않는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사람이 기업이고, 기업이 사람이니, 따뜻한 인간애로 사람들이 성과를 내도록 도움을 주는 일에 우선이었다. 팀워크와 책임 경영을 강조하면서 인화단결을 제일의 경영 이념으로 삼았다. 연암 구인회가 지켜온 삶과 경영철학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뛰고 있는 LG인들의 가슴속에서 LG를 지속 성장시키는 핵심 가치로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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