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의 역사 연재14편] 사회 정의를 지킨 사람들을 기억하고 배려한다.

LG의 역사 연재14편] 사회 정의를 지킨 사람들을 기억하고 배려한다.

LG의 역사 연재14편] 

사회 정의를 지킨 사람들을 기억하고 배려한다.   


2015년, 광복 70주년에 즈음하여 LG가 독립운동을 후원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네티즌들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LG는 창업 초기부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요하게 여겨왔다. 일찍이 구인회 창업회장의 부친도 김구 선생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후원했고, 그 뜻을 이어받은 구인회 창업회자 역시 충칭 임시정부에 활동자금을 보탰다. 우리 사회 정의를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구인회 창업회자의 뜻은 광복 후에도 계속 이어져 '사회에 대한 기업의 책임'이라는 경영철학이 되었다. 그리고 이 정신은 7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한여름의 더위가 극성스럽던 1942년의 어느 날, 경남 진주의 구인상회에 뜻하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비단을 구하러 왔는데, 적당한 물건이 없을까요?" 구인회 사장은 인조견 '스후'를 팔고 있는 가게에 와서 비단을 찾는 손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순간 손님이 구 사장의 귀에 입을 바싹 데더니 속삭였다.


"여보게, 나 설뫼골의 안희제일세, 날 알아보시겠는가?" 손님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던 구 사장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러더니 짐짓 큰 소리로 말했다. "시국이 시국이라 비단 구하기가 별 따기입니다. 그렇지만 일부러 예까지 오셨으니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가게 안쪽으로 안내된 손님은 스물두 살 위의 고향 선배 안희제였다. 그는 지체 없이 용건을 꺼냈다.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에 자금이 필요하니 만원정도만 지원을 해달라는 이야기였다. 구 사장은 긴장한 빛이 역력한 그의 눈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의 지금 처지로도 현금 만원이라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니지만 잘 알겠습니다. 온갖 고초를 겪고 계시는 선생님과 행동을 같이 하지는 못하지언정 제 힘이 닿는데까지 자금으로나마 동참을 하겠습니다." 구사장은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돈 만원을 준비해서 손님에게 건네주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독립운동을 도운 구인회 창업회장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구인회 창업회장의 이 독립운동 후원 이야기는 젊은 사업가 구인회가 진주에서 '구인상회'라는 포목상을 경영하고 있었던 1942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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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일제 말기. 독립운동에 대한 탄압이 극에 달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구인회 사장은 '백산상회'를 경여하며 임시정부를 후원하던 독립운동계의 거물인 백산 안희재 선생에게 거금 1만원을 전달했다. 안희제는 유림을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한명이자 고명한 학자인 안효제 교리의 친척 동생이기도 했다. 두사람은 일찍이 구인회 사장의 조부인 만회공과 안효제 교리의 친분 덕분에 전부터 안면이 있었다.


신병 치료 차 귀국했던 안희제 선생은 치료를 마치고 다시 만주로 돌아가기 전 임시정부로부터 거액의 독립운동 자금을 조성하라는 밀명을 받고, 구인회 사장에게 독립운동을 위한 자금 지원을 부탁했던 것이다. 만일 구 사장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주었다는 것이 들통 나면 장사를 못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고향에 계시는 부모와 일가친척까지 모두가 풍비박산하고 패가망신하게 될 일이었다. 그러나 구 사장은 나라를 되찾고 겨레를 살리고자 하는 일에, 편안하게 살고 있는 자기라도 힘을 보태어야 한다고 생각하닌 주저할 수가 없었다. 일찍이 부친 춘강공도 1930년경에 의령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구여순을 통해 상하이 임시정부의 백범 김구 선생에게 독립운동 자금으로 일화 오천엔을 기탁한 적이 있었기에, 아버지의 뜻을 이어 받을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했다.



이 일이 있고 3년뒤, 우리나라는 일제 치하에서 벗어나 해방을 맞았다.안타깝게도 백산 선생은 일제 경찰에 잡혀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해방을 보지 못하고 숨을 거뒀지만, 당시 백산 선생이 국내에서 모금해 충칭 임시정부에 보낸 자금은 20여만에 달해 독립운동에 큰 힘이 됐다고 전해진다. 또 훗날 해당된 조국에 돌아온 김구 주석이 맨 먼저 백산 선생의 유가족 안부부터 물었다는 일화에는 이런 깊은 사연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국가가 있어야 기업도 있고 개인도 있다는 신념으로 독립운동을 후원한 구인회 창업회장의 철학은 LG경영이념의 가장 깊은 뿌리를 구성하고 있다. 창업 이후 70여년이 흐른 오늘날 LG가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기업, 책임지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토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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